어제 저녁 감기로 몸이 썩 좋지 않아 오랜 만에 일찍, 8시 반(!)에 집으로 가기 위해 사무실을 잰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거의 매일 12시 넘어 퇴근하다가 낮이 길어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는 하늘을 보며 나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요즘 한참 뜨거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전환 기간을 늘리자는 한나라당의 법안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은 뜨거운 땡볕 아래 낮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고,
나는 냉방이 된 사무실에 앉아 일 하다 그들을 등지고 집으로 걸어 간다.
그들도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텐데, 딱딱 길 위에 앉아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언제 쫓겨날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운이 좋아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길 바닥에 앉아 있는 그들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모른척 할 수 있는 걸까?
나 스스로 비정규직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거니와, 악다구니 치며 입시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앞서도록 아이를 다그치고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붓지 않으면 정규직으로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그래서 그런 돈을 감당하기 어려워 비정규직은 대물림한다는 얘기까지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렇게 길 바닥위의 그들과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건만, 다른 곳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함과 씁쓸함이 몰려온다.
일찍이라고 해봐야 10시가 넘어 아이가 잘 시간이 다 되어 집에 들어갔더니,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에 한장씩 셈 공부한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덧셈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잘 했다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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