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그미라고 어려서 어렴풋이 들어보았던 키가 작은 아프리카의 종족에 대한 책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수렵 채집 생활을 하는 피그미들이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라느니 아니면 독자적인 문화를 갖지 못 하고 주변 다른 흑인 종족들에 종속되어 산다느니 하는 생각들이 퍼져있었다는데, 글쓴이는 피그미 부족들과 함께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직접 숲속에 들어가서 생활을 하면서 학문적인 시각이라기 보다는 같이 어울려 사는 이웃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듯이 섬세하고도 정성스럽게 피그미들의 일상과 그들만의 문화, 주변 흑인들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협력 관계를 이루며 사는 다양한 모습들을 알려 준다.
피그미들은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연에 어울리며 살아간다는 것에 가까운 듯 한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으로 보자면 지속가능한 삶을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 째 대대로 살아온 부족이다. 한편으로는 유럽 열강들에 의해 숲을 갈아 엎고 농장을 만들어 식민지 형태의 농업에 종사하는 주변 흑인 마을들과 교류를 하면서 사냥을 해서 얻은 고기와 문명의 이기들 - 금속이나 술 등 - 을 교환하는데, 흑인들은 피그미들이 자신의 노예 - 말을 듣지 않는 골치 아픈 노예 - 라고 생각하지만 피그미들은 숲 속의 생활을 모르고 사는 흑인들을 욕 하면서도 실용적인 협력 관계를 위한 교류 관계가 끊기지 않을 정도에서는 흑인들의 요구들을 받아들여 결혼이나 장례 절차들을 따라 주기도 한다.
이들이 이렇게 식민지 근대 문명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숲이라는 그들만의 공간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숲에서 나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의 강요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숲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독립적으로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연연하지도 않는 것이다. 숲이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주변 생태계가 계속 재생산되도록 하는 밑바탕이자, 피그미들의 생활 방식 자체를 외부의 문명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완충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풀과 흙으로 만든 집에서 사는 소박한 모습과 몰리모나 엘리마와 같은 정열적인 축제 문화를 모두 가지고 있는 피그미들의 삶을 외부의 이질적인 관찰자라기 보다는 구성원의 한 사람 처럼 따뜻한 이해와 애정으로 써 내려간 글들을 읽어 내려가면, 어느 새 나도 아프리카의 햇볕도 잘 들지 않은 깊고 깊은 숲 속에 들어와 모닥불 주위에 피그미들의 무리에 끼어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아늑하고 아득하다. 이런 삶과 요즘의 우리 삶을 비교한다면? 이런 비교 자체도 이미 시큰둥 할지 모를 일이다. 피그미는 요즘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우리들의 숲은 어디 있을까?
7점.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