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인(聾人)이라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청인(聽人)이라는 말은 처음이다.
청인이란 귀로 이야기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농인 아내와 청인 남편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엮은 일본책으로
도토리의 집이나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와 같은 감동을 기대하며 집어들었는데,
글쓴이들이 가장 마다하는 것이 바로 이런 '치유의 감정을 얻기' 위해 장애인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한방 제대로 얻어 맞고는 지하철 안에서 부끄럼으로 멋쩍은 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정상인과 장애인이 아니라, 수화도 하나의 정상(!)의 언어로 인정받는 세상이다.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청인과 다를 뿐 그들도 똑 같은 희노애락을 갖은 사람들이며, 그들이 스스로에게 편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동등하게 살아나갈 수 있도록 사회는 이를 존중해주고 지지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청인이란 말을 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예쁘게 포장되거나 다듬어 지지 않아 오히려 아주 절실하고 생생하다.
모든 것이 경쟁을 해야만 발전한다고 하고, 언제나 들어간 돈과 시간에 견주어 얼마나 많은 결과를 낳는지만을 따져 보는 요즘 세상에서 이처럼 소수자나 약자들은 삶 자체가 힘겹고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가끔 상상으로 반란을 꿈꾸기도 한다. 수화로 이루워지는 대학교 강의실 안, 수화를 모르는 청인들이 강의 내용을 알아 듣지 못 해 힘들어 할 때, 당당하게 앞으로 나가 그들을 위해 통역을 해주는 상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꿈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수화로만 모든 것이 가능한 농인을 위한 대학교가 있고, 공공기관이든 음심점이든 법으로 농인이 동등한 서비스를 누리도록 보장받고 있다고 한다.
항상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진 글쓴이에게 미국의 농인 대학교의 교수가 건내준 "스스로 떠들지 않으면 아무도 당신의 권리를 찾아 주지 않는다."는 충고의 울림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
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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