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람들, 지나치는 나

어제 저녁 감기로 몸이 썩 좋지 않아 오랜 만에 일찍, 8시 반(!)에 집으로 가기 위해 사무실을 잰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거의 매일 12시 넘어 퇴근하다가 낮이 길어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는 하늘을 보며 나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요즘 한참 뜨거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전환 기간을 늘리자는 한나라당의 법안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들은 뜨거운 땡볕 아래 낮부터 그렇게 앉아 있었고,
나는 냉방이 된 사무실에 앉아 일 하다 그들을 등지고 집으로 걸어 간다.
그들도 가족들과 따뜻한 저녁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일텐데, 딱딱 길 위에 앉아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언제 쫓겨날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운이 좋아 비정규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길 바닥에 앉아 있는 그들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고 모른척 할 수 있는 걸까?

나 스스로 비정규직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거니와, 악다구니 치며 입시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앞서도록 아이를 다그치고 사교육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붓지 않으면 정규직으로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그래서 그런 돈을 감당하기 어려워 비정규직은 대물림한다는 얘기까지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렇게 길 바닥위의 그들과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건만, 다른 곳을 바라보며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안함과 씁쓸함이 몰려온다.

일찍이라고 해봐야 10시가 넘어 아이가 잘 시간이 다 되어 집에 들어갔더니,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에 한장씩 셈 공부한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볼 수 있었다. 덧셈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잘 했다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 마음이 복잡하기만 하다.

by 창희 | 2009/07/01 11:32 | 조각 모음 | 트랙백 | 덧글(0)

불교풍속고금기



글쓴이가 불교 신문에 연재했던 불교의 풍속에 대한 글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또는 잘 알려지지 않은 50가지 풍습에 대해서, 석가모니 시대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을 견주어 그 뿌리와 변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육식이 처음부터 완전히 금지되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과 석가 시대 때는 스스로 일을 하여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을 터부로 여기고 탁발(托鉢)이라고 하여 걸식을 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자기가 먹기 위해 짐승을 죽이는 것은 반대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애매하지만 자연스럽게 얻은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고기만이 아니라 식물도 생명인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고기만을 살생(殺生)이라고 하며 금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도 하는데, 어찌 보면 이러한 생각이 부처의 생각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 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불교가 처음 일어났던 때의 인도 사회의 특성과 농사를 지으면서 나무를 베어내는 살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이기 어렵다. 오히려 중국의 선종에서 노동을 중요하게 여기고, 스스로 먹거리를 마련하도록 한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나 성당은 우리의 생활 공간에 가깝게 자리잡고 있어서 낯설지 않은데, 사찰은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산 속에 있는 것이 대부분이니 신자가 아니라면 그 안의 생활이 어떤지 알기는 쉽지가 않다. 꼭 종교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불교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아쉽다면, 불교 신문에 실렸던 글이라서 그런지, 아주 문외한이 보자면 여러 가지 낱말들을 설명 없이 쓰고 있어서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과 글의 흐름이 좀 단조로와서 지루한 곳도 있다.

5점.

by 창희 | 2009/06/10 22:50 | 책 - 호기심 | 트랙백 | 덧글(0)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잘 아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고서야 잘 가르칠 수 없지만, 잘 안다고 모두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처럼 그 분야를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과학을 소개하는 경우는, 무엇보다도 재밌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그런 기준에 따르면 이 책은 우선 아주 좋은 책이다. 뉴턴의 고전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이 어떻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발전하는지, 거기서 다시 양자역학을 거쳐 현대의 초끈 이론이나 혼돈 이론에 이르게 되는지 물리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해 줄 뿐아니라, 여지껏 읽어던 다른 어떤 책 보다도 어려운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물리학의 큰 흐름이 한 손에 잡히는 듯 하다.

특히, 상대성 이론만 해도 등속도로 운동하는 조건에서의 운동을 나타내는 특수 상대성 이론과 등가속도 운동을 하는 조건에서의 운동을 나타내는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설명이 명쾌하여 그동안 봤던 어떤 해설들 보다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이야기 할 대 흔히 등장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도 잘 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불확정이란 들여다 보지 않아서 그렇지 결국은 어느 하나로 결정되는데 단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 보기 전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포개져 있다가 들여다 보는 순간 마침내 하나로 결정된다는 것이 그 참 뜻이라는 것이다. 파동 처럼 보이던 빛이 들여다 보자 빛 알갱이(광자)에 의한 움직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글쓴이는 물리학이 어떻게 생물학과 같은 다른 과학 분야와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해 왔는지도 찬찬히 설명해주는데, 얼마전 읽었던 '생물과 무생물사이'에서도 나왔던 슈뢰딩거라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닦았던 물리학자 이야기도 자세하게 들려준다.

이처럼 다른 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예술과 문학 그리고 철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세상을 바라 보는 시야를 넓혀 주는데 모자람이 없다. 과학이란 무엇이고, 과학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과학의 뿌리와 숲으로 읽는이를 이끌며 도구로써만 과학을 잘 써먹으면 된다가 아니라, 과학도 문학이나 예술 처럼 인류의 정신문화의 자산이며, 어떤 정신문화 보다도 합리성을 쫓는 과학은 스스로 반증을 통해 새로운 법칙과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열린 구조임을 강조한다. 아울러 이런 과학 정신이 우리 사회에도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도 여러 가지 역사의 장면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물리학 책이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교양의 압축판을 읽었다고 하면 좀 설레발일까? 비록 노벨상과 같은 큰 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과학자는 아니라지만, 반듯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글쓴이의 강의를 모아 놓은 이 책 한 권이 이름난 상 보다 어쩌면 더 큰 값어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만의 세계에만 빠지지 않고 세상과 상호 작용하려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흔히 왠지 자신의 유식을 자랑하듯이 늘어놓는 참고 도서 목록도, 책 마다 짧은 안내를 정성껏 달아 놓아 읽는이가 한 발자욱 더 나아가는데 길잡이도 하고 있는 것도 반듯하고 열정어린 마무리다.

9점.

by 창희 | 2009/06/01 13:56 | 책 - 호기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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